가족 3대가 대물림 경영하는 '밀레'

by 벼룩시장01 posted Oct 2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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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전 뜨개질 양말이 아웃도어 첨단패션
어머니는 회장, 아들은 대표, 손녀는 실장

 

밀레.jpg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새로 생긴 한 양말 가게에 3대가 모였다. 아웃도어 브랜드 ‘밀레’를 운영하는 밀레에델바이스홀딩스 창업자 고순이 회장(84), 한철호 대표(58), 한정민 실장(29)이다. 한정민 실장은 최근 패션 양말 브랜드 ‘스테이 골드’를 론칭했다. 
고순이 회장이 털실로 등산 양말을 짜기 시작한 게 연간 매출액 3000억 원대 기업의 시작이었다. 동아일보는 최근호에서 3대가 들려준 스토리를 특집으로 보도했다. 한국 섬유 산업과 아웃도어 산업의 산 역사였다. 제각기 다른 3색 원동력으로 삶과 기업을 이끈 할머니, 아버지, 청년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고 회장은 우선 미술 공부한 손녀딸이 양말 사업을 해서 놀랐다고 했다. 힘든 길을 가려고 하는것 같아서다. 그러나 지금 엄마와 아들, 손녀는 손발이 잘 맞는 파트너가 되었다. 
밀레의 전신은 1966년 설립한 한고상사다. 서울 은평구 수색지역에 살던 고 회장은 그해 본격적으로 가내수공업을 시작했다. 33세 젊은 엄마였던 그는 손재주가 좋았다. 일본 책을 사 공부한 뒤 털실로 남매 옷을 해 입혔다. 6·25전쟁이 끝난 지 10년도 넘었지만 제대로 된 기성복이 없던 시절이었다. 고 회장이 만든 아동 스웨터 디자인이 예쁘다고 동네에서부터 소문이 났다. 산을 좋아하던 남편을 위해 등산 양말도 직접 털실로 짰다. 
남편인 고 한용기 전 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대학 강사로도 일했지만 월급만으론 생계가 쉽지 않았다. 고 회장은 털실을 더 사서 이웃 주민들에게 나눠 주며 같이 양말을 만들자고 했다. 일당도 쳐줬다. 그렇게 만든 양말이 금방 팔려 나갔다. 아예 니트를 짜는 기계를 집에 들여왔다. 남대문에서 유명한 양말이 됐다.
회사 이름은 부부의 성인 한씨, 고씨를 따 한고상사로 지었다. 한고상사는 1970, 80년대에 국내 최초로 ‘쿨맥스’ 등 신소재를 도입한 아웃도어 업계의 선도 기업이었다. 
“공장의 ‘공’자도 모르던 사람이었는데, 식구(임직원)들이 늘어나니 자꾸 새로운 걸 개발할 수밖에 없었어요. 다 내 책임이잖아요. 일본에서 신소재도 들여오고 디자인도 바꿔보고 그랬죠. 한동안 고어텍스 소재도 우리만 팔 정도였으니까요.”
한 대표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의 창업을 지켜봤다. 모자와 스웨터로 사업은 확장돼 갔다.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기 직전 해인 1984년 그는 범양상선에 입사했다. 하지만 3년 만에 그만뒀다. 부친이 1985년 작고하면서 어머니를 돕기로 결심한 것이다. 회사에 합류한 1987년은 한 대표가 28세 때다. 당시 한고상사 매출은 3억 원, 종업원은 30여 명이었다. 
그때 아들이 입사를 원했다. 그후 엄마와 아들은 잘 맞는 사업 파트너가 됐다. 한 대표는 경영 2세지만 사실상 동업자나 다름없었다.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아웃도어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보고 등산 조끼 등 의류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1990년에는 에델바이스를 토털 아웃도어 브랜드로 새롭게 론칭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사업도 잘나갔다. 대기업에 아웃도어 의류를 납품하는 비즈니스다. 한 대표 입사 후 10년 만에 회사 매출은 100억 원대로 늘었다. 그야말로 고속 성장이었다.
그때 외환위기가 터졌다. OEM에서 문제가 터진 것이다 대기업들이 줄줄이 부도를 내니 돈은 못 받고 창고에는 재고만 쌓여 갔다. 
고 회장과 한 대표는 날마다 부도 걱정에 시달렸다. 한 대표는 직접 백화점 매대에서 OEM 물량 재고떨이에 나섰다. 한 대표는 OEM 사업은 위기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브랜드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1921년 론칭한 프랑스 정통 아웃도어 브랜드 ‘밀레’의 라이선스 사업을 하기로 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프랑스 본사와 계약을 맺었다. 10년 후인 2009년, 이번엔 유럽이 금융위기에 시달렸다. 본사에서 한국 상표권을 아예 인수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왔다. 2009년 3월 2일 원-유로 환율은 유로당 1979.78원까지 치솟았다. 한 대표는 고민했다. 인수 금액이 100억 원을 훌쩍 넘었다. 잠을 못 이루며 고민했지만 앞으로 성장할 아웃도어 시장, 로열티를 계산해 보면 인수가 답이었다. 
2004년 한 대표는 가장 큰 모험을 감행했다. 2009년 4월 상표권을 인수하기 전 회사 매출은 650억 원 수준이었다.
이 모험으로 밀레는 크게 도약했다. 한국 아웃도어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밀레의 연간 매출액은 2014년 4000억 원까지 올랐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내수 불황과 유행의 변동으로 2015년부터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밀레 매출액도 지난해 3200억 원 수준에 머물렀다. 
한 대표의 장남인 한승우 밀레 브랜드본부장(31)은 온라인 사업과 젊은층 공략, 밀레 클래식 등 신규 라인 확장 전략을 맡고 있다. 오빠와 달리 한 실장은 가업의 뿌리인 양말로 신규 사업을 시작했다. 
아버지 한 대표는 “양말은 패션의 ‘끝판왕’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양말이 너무 싸게 팔려서 공장조차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한 실장은 “요즘 양말에 포인트를 두는 스타일링이 확산돼 미국에선 ‘양말은 새로운 넥타이다’라는 말도 나온다. 스테이 골드 론칭으로 양말을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스테이 골드 양말 중 30%는 일본의 고급 니트 공장에서 만든다. 최근 남성 바지가 짧아지고, 여성도 운동화를 즐겨 신으면서 명품 업체들도 다양한 양말을 내놓고 있다. 60만, 70만 원대 양말도 있다. 
한 실장은 직접 양말을 디잔인한다. 
“저는 어릴 때 발에 상처가 있었고 그게 콤플렉스였어요. 그걸 가리느라 샌들도 안 신고 양말을 사들이기 시작했죠. 양말 ‘마니아’가 된 거예요. 집에 100켤레는 넘어요. 좋아해서 양말 사업을 해보고 싶었던 거예요.”
연매출 3-4천억대를 오가는 아웃도어 브랜드 ‘밀레’는 앞으로 3대에서 4대까지 계속 가족경영을 이어나가며 분야를 넓혀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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