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스티븐 연…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 오른 첫 아시아계 배우
미국드라마 '워킹데드'의 스티브 연. 사진: FOX채널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한국명 연상엽·38)이 없었다면 자칫 ‘미나리’는 탄생하지 못할 뻔했다. 그는 미 남부에 정착하려
분투하는 한인 가정의 가장 ‘제이콥’ 역을 맡았을 뿐 아니라 영화 제작에도 참여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는 “미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한국인은 우리가 보는 한국인과 굉장히 다르다. 진실한 한국인
의 모습을 전하기 위해 영화 제작의 모든 과정에 (한국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제작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
이 역할로 그는 다음 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 부문 후보에 오른 첫 아시아계 배우다. 발표 직후
그는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초현실적인 느낌”이라고 말했다.
과거 할리우드에서 아시아 남성에 대한 묘사는 대체로 두 가지 가운데 하나였다. 순진무구한 희생양이거나 탐욕스럽게 돈만
밝히는 구두쇠거나. 하지만 스티븐 연은 이런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있는 아시아계 배우로 꼽힌다. 그의 출세작인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좀비가 활개치는 아비규환의 세상에서도 민첩한 판단력과 동료를 감쌀 줄 아는 리더십을
지닌 ‘글렌 리’ 역으로 호평을 받았다.
스티븐 연의 삶도 ‘미나리’와 닮은 꼴이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5세 때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건너갔다. 이듬해부터 미
국에서 살고 있는 한인 1.5세다. 한국에서 건축업을 하던 그의 부모는 미국에서 미용용품 판매점을 열어서 생계를 이어갔다.
스티븐 연은 캘러머주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1학년 때 학교 극단의 연극을 본 뒤 입단해서 연기를 익혔다. 부
모님이 원했던 변호사나 의사의 꿈을 접고, 졸업 후 시카고 지역 극단에 입단해서 본격적인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오랜 단역
생활을 했지만, 2010년 미 드라마 ‘워킹 데드’에 출연하면서 스타로 발돋움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와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 등 한국과 미국 영화를 넘나드는 점도 독특한 매력이다.
그는 ‘미나리’에서 가장 역할을 연기할 때에도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고 고백했다. 지난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아버지와 나
란히 앉아서 영화를 보았을 때 이 부자는 함께 눈물을 쏟았다. 그는 “이민 1~2세대에는 세대 차가 존재한다. 문화·언어적 차이
때문에 개념적·추상적으로만 아버지를 바라보았는데 영화를 통해서 아버지라는 사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