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 바울이 끊임없이 경고한 것들 가운데 하나인 이것을 우리는 너무 성급하게 무시한다. 올해는 자랑에 대하여 생각하기
딱 좋은 해이다. 올해가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마르틴 루터에게, 이 종교개혁은 공로를 자랑하지 말고 오로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라는 교회를 향한 부르짖음이었다.
신학적으로는, 오늘의 교회가 ‘자랑’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이 개념을 몇 편의 짧은 편지에서 여
러 번 언급했음에도 말이다.
문제는 “자랑”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상당히 유아적인 우리의 관점일 수 있다.
현대인들의 귀에는 자랑이 6살짜리 아이가 “우리 아빠는 너희 아빠보다 힘이 더 세”라고 말하는 것이나, 프로레슬러의 허
세, 아니면 아마도 어떤 대통령이 트위터에 올린 말처럼 들릴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자랑하지 말라고 바울이 꾸짖는 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정치와 프로 스포츠에서 자랑이 없는 곳은 없다. 자랑은 광고, 회사 생활, 소셜 미디어, 그리고 두 말할 것도 없이, 군대에
서도 핵심이다.
어른들은 어떤 제품들, 프로그램들, 또는 훈육 방법들을 자랑한다. 사회 지도자들은 자기 나라에서 자신들이 행사하는 영
향력과 애국심을 자랑한다. 자랑은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나 있다.
자랑은 교회 안으로도 들어온다. 우리 교단은 성장하고 있는데, 너희 교단은 쪼그라들고 있다. 우리 지도자들은 용기가
있는데, 너희 지도자들은 매가리가 없다. 이런 정서는 분열을 조장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안전의 원천과 승리의 소망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자리에 있음을 드러낸다.
글-앤르류 윌슨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