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 광원산업 회장, KAIST에 쾌척…독신으로 살다 2년 전 81세에 첫사랑과 결혼
서울대 법대 출신…젊었을 때 기자로 명성…목축업, 모래 채취, 부동산 사업으로 성공
2년 전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가 81세에 대학동기이자 첫 사랑과 결혼하며 세간의 화제가 됐던 한국의 여성기업인이
최근 또다시 화제를 뿌렸다.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83.사진)이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676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출연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소식이 소개되자, 그녀가 이전에 이미 미국에 있는 약 8백만달러 상당의 부동산을 KAIST에 기부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미연방정부 기관이 세들어 있는 빌딩의 건물주’라는 타이틀까지 갖고 있는 기업가로 전해져 한인
사회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해방 이전인 1936년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당대 최고의 명문 경기여고를 졸업한 후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는데,
첫 사법고시에서 낙방을 경험하자, 법조인에 대한 미련을 깨끗하게 접었다고 한다.
그 후 그녀는 신문사 기자를 다음 직업으로 선택, 서울신문, 현대경제신문, 서울경제신문 등에서 근무했다. 이때 정·재계
인사들과 두루 인맥을 맺으며,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골동품 취재기 등으로 당시 언론계에서 이름을 떨쳤다.
기자로 일하던 이 회장은 1980년 전두환 정부가 서울경제신문을 강제 폐간하자 이번에는 언론에 대한 미련을 깨끗하게
접고 제2의 직업으로 사업가로 변신했다.
이회장은 당시 아버지가 남긴 50만원이 담긴 적금 통장 2개를 사업 밑천으로 해 목축업을 시작했다. 농사도, 가축도 몰랐
지만 살아 있는 걸 키우는 게 그나마 덜 힘들 것 같아서 목축업을 택했다는 것.
그녀는 이때 남다른 사업수완을 보였다. 돼지 과잉 출하로 육류 가격이 폭락할 때는 국군장병 위문품으로 돌려 이익을
남겼고, 우유 과잉 공급 등의 문제가 발생한 ‘우유 파동’ 때는 초등학생 우유 무료 제공 방식으로 판로를 개척했다.
이 회장은 자서전에서 “사업은 운”이라며 “다만 운이 내 앞을 지나갈 때 누구는 붙잡고 누구는 놓치느냐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목축업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모래 채취 사업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부를 일궜다. 1988년부터 부동산 사업을 시작하며 광원
산업을 세우고 여의도백화점 일부 매입 등을 통해 사업을 확장했다.
그녀는 조직폭력배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하고 신장암 투병을 하며 죽음의 고비도 넘겼는데, 이후 LA에도 부동산을
구입, 미국을 자주 오고 갔다.
이 회장이 766억원에 달하는 모든 자산을 KAIST에 기부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미국에서 겪었던 일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난 2000년 LA에서 저택 구매하는 과정에서 매매계약서에 피상속인을 쓰지 않으면 사후 국고로 귀속되는 것을 알게 된
이 회장은 이후 재산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녀는 한국의 과학 발전을 위해 재산을 기부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2012년 미국에 있는 700만달러 규모의 부동산
을 KAIST에 유증기부(유언에 의한 유산 기부)한다는 소식을 전해 큰 화제를 모았다. 이후 2016년 다시 미국 부동산 10억원
상당을, 이번에는 676억원 가치의 부동산을 모두 KAIST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언젠가는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리라 생각했는데, 우리나라의 국가 발전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가 고민하다가 KAIST를 선택
했다”며 “과학기술의 힘이 대한민국 발전의 힘이며, 그 원동력은 KAIST라고 확신한다”고 기부 약정식에서 밝혔다.
80년 넘게 독신으로 살아온 이 회장은 지난 2018년 서울대 법대 동기동창으로 대구지검 지청장을 지낸 첫사랑 김창홍 변호사
와 결혼했다. 이 회장은 “작년 9월 기부 의사를 밝히고 나서 최근 건강이 나빠져서 계속 누워있으니까 남편이 ‘그 돈 언제 기부
할 거냐’라고 물을 정도로 내 결정을 응원해줬다”며 애틋한 부부애를 자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