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땐 농구부서 활발히 활동…백인동네서 정체성혼란 겪기도
대학서 K-Pop 등 한국에 눈뜨고…입양 당당히 밝히며 사회생활
▲입양 직후 색동 한복 차림과 가톨릭 교회에서 영성체를 받는 장면, 초등학교 6학년 때 농구팀 활동, 대학 졸업식에서 학사모를 쓴 채 환하게 웃는 모습. 사라 피셔 제공
1993년 6월 경기 포천에서 미혼모의 딸로 태어난 윤초는 하루 만에 홀트아동복지회로 넘겨졌다. ‘김’이란 성은 어머니에게서 따왔고, ‘윤초’란 이름은 홀트 측에서 ‘진실을 닮았다’는 뜻으로 지어줬다. ‘한국의 딸’에서 ‘미국의 여성’이 된 윤초의 성장사를 돌아본다.
영등포구의 한 위탁가정에 맡겨진 윤초는 8개월 뒤인 1994년 2월 23일 미국 캘리포니아로 떠났다. 윤초가 탑승한 유나이티드 808편 비행기에는 다른 3명의 입양아도 함께 있었다.
윤초가 한국을 떠날 때 가져간 것은 대한민국 일일여권에 색동저고리 한복 한 벌, 장난감 그리고 입고 있는 배내옷이 전부였다.
유효기간 하루짜리 여권은 윤초가 미국에 도착한 이후에는 국제법상 더 이상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윤초는 캘리포니아주 주도인 새크라멘토에서 자동차로 3시간 정도 거리인 왓슨빌에서 성장했다. 양부 제럴드 피셔와 양모 캐런 피셔에게는 직접 낳은 조시와 크리스 두 아들이 있었다. 피셔 부부는 세상에 좋은 가정이 필요한 아이가 너무 많다고 오랫동안 믿어 왔고 입양을 결심했다. 윤초는 피셔 부부의 세 번째 한국 입양아였다. 피셔 부부는 윤초에게 사라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어린 시절 사라는 누굴 마주치건 재잘거리며 얘기를 하는 붙임성 좋은 소녀였다.
사라는 백인이 대부분인 미국 시골 마을에서 아시아계로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했다. 가족끼리 외식을 하러 나가면인종이 뒤섞인 피셔 가족을 바라보는 호기심 어린 시선도 느꼈다. 학교에서 자신의 문화권에 관한 음식을 가져오는 숙제가 나오면 양부모의 집안인 아일랜드나 크로아티아 음식을 가져가야 할지, 한국 음식을 가져가야 할지 고민하기도 했다처음 만난 상대방이 ‘피셔’란 성을 듣고 당황해하면 ‘입양됐어요’란 말을 붙이는 건 일상이 됐다. 하지만 사라는 교내 농구팀과 배구팀, 소프트볼팀에서 활약하고 육상 대회에서 메달을 따는 등 적극적인 학생이었다. 백인 친구들과 팀을 이뤄 대회에서 입상하는 등 활발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사라가 한국을 이해하길 원했던 피셔 부부는 사라를 한국 식당에 데려갔고, 한국 여행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사라는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