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마켓으로 시작해 온·오프라인 의류업체로 급성장
한국 최대 의류 시장인 동대문 패션 시장은 생산부터 유통까지 한번에 이뤄지는 세계적인 패션 클러스터다. 시장 규모만 15조원, 하루 거래액은 500억원에 달한다. 거대한 규모와 달리 내부 유통 시스템은 아날로그 방식이다. 대부분의 도매 및 소매 상인, 사입자는 수백장에 달하는 주문서나 영수증을 일일이 수기로 작성하면서 거래 내용을 정리·확인한다.
이러한 비효율적인 방식을 바꾸고자 나선 사람이 있다. 동대문 패션 도매시장 내에서 사입, 결제를 포함한 거래를 앱 하나로 간편하게 할 수 있게 했다. 사입최적화 플랫폼 ‘셀업’을 만든 이연(32) 쉐어그라운드 대표다.
대학에서 도예학을 전공한 이 대표는 졸업 후 2013년 작은 도예 공방을 차렸다. 상품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고 수강생을 교육했다. 1년여간 운영하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수공예품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4년 친구 2명과 함께 여러 수공예업체를 모집해 플리마켓 ‘써리마켓’을 열었다.
“한 달에 한 번 여러 수공예업체의 핸드메이드 제품을 모아 판매하는 플리마켓을 서울 홍대, 합정동 등에서 팝업스토어 형식으로 열었어요. 규모가 커져서 제품 판매 외에도 신진작가들의 전시회, 기부 행사 등도 진행했습니다. 판매 수수료가 아닌 참가비만 받고 진행했던 터라 큰돈을 번 건 아니지만 특색있는 셀러들과 함께 재밌게 일했어요. 그러던 중 여러 디자이너 브랜드를 한곳에 모아 제품을 판매했죠. 당시 월 매출은 1억원 정도였습니다. 지하 팝업스토어로 시작해 약 1년 만에 매장을 네 군데로 확장했습니다. 2016년 홍대에 ‘30ME’라는 브랜드를 론칭했습니다. 판로를 넓히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도 함께 열었죠.”
◇매출이 오를수록 현금 없는 현실에 창업 결심
월 억대 매출을 찍었지만 항상 돈에 허덕였다. 사입할 때 당일 현금으로 거래해야 한다는 동대문 도매상가의 시장 규칙으로 인해 현금 흐름 조절에 어려움을 겪었다. 돈을 벌수록 돈을 빌리러 다녀야 하는 이상한 현실을 마주했다.
“자사 몰에서 판매하는 건 문제가 없었는데 플랫폼 판매가 문제였어요. 스타일쉐어, 에이블리 등 대다수의 패션 플랫폼은 월 1일부터 말일까지 판매한 금액을 보름 단위나 익월에 정산해줘요. 동대문 도매업체에는 당일에 현금으로 물건값을 지급해야 하죠. 늦어도 다음 날까지는 계좌이체를 해야 합니다. 거래처에 물건값은 바로 줘야 하는데 A 쇼핑몰에서는 2주 뒤에 돈이 들어오고, B 쇼핑몰에선 한 달 뒤에 들어오는 식이었죠.
장사가 잘될수록 통장에는 돈이 없었어요. 매출액이 커질수록 돈을 계속 빌리러 다녀야 했죠. 도매업체에 상품 대금 결제가 늦어지면 물건 받는 날짜가 밀리고, 결국 소비자 배송이 늦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어요. 현금이 없어서 고생하는 게 단순히 소매업체만의 문제는 아니었어요. 도매업체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죠. 도매업체도 원부자재를 사 와서 옷을 만드는데, 원부자재를 사 올 때도 현금 거래를 합니다. 도매업체도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닌 거죠.”
이 대표는 사입 과정에서 생기는 불필요한 과정도 너무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대문 의류 시장에는 사입삼촌(도매 의류 주문과 배송을 대행하는 중간 상인)이 있어요. 사입삼촌은 동대문의 의류 도매업자와 소매업자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직접 물건을 가지러 가지 못하는 소매업자를 위해 대신 도매처에 가서 물건을 받고 대금을 지불하고 배송까지 해주죠. 하지만 대부분 아날로그 방식으로 일해요. 사입삼촌이 물건을 주문하기 위해서는 전화나 카카오톡으로 도매업체에 연락해야 해요. 보통 3~4시간은 걸립니다. 또 주문이 잘 들어갔는지 소매업자가 전해준 엑셀 파일을 들고 일일이 확인해야 합니다. 정산도 수기로 해야 해서 수많은 거래처를 구분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죠.
당시 동대문 시장 특화 브랜드 ‘DFWM’ 사업을 총괄하면서 동대문 도소매 업체, 사입삼촌이 모두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DFWM 사업은 2018년 서울시 중구청, 중소벤처기업부, 동대문 상인연합회, 두타몰이 함께 진행한 브랜딩 사업이었어요. 평화시장, 테크노상가, 벨포스트 등 8개 동대문도매상가의 브랜딩 사업을 총괄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직접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2019년 ‘쉐어그라운드’를 창업했습니다.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30ME’는 매각했어요.”
◇동대문 패션 도매시장의 거래 서비스
쉐어그라운드는 2020년 동대문 B2B 소프트웨어 서비스(SaaS) 플랫폼 ‘셀업’을 정식 론칭했다. ‘셀업’은 종이 대신 모바일 앱만으로 사입 업무를 할 수 있게 했다. 동대문 패션 도매시장을 기반으로 거래하는 도매 및 소매업체와 그 거래를 중개하는 사입삼촌을 대상으로 서비스한다.
‘셀업’은 업무 효율성과 편의성을 높일 수 있도록 각 사용자 특성에 맞춘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 도매업체는 소매와 사입자가 요청한 주문을 앱 하나로 손쉽게 확인·관리하고 판매 상품 사진과 상세 정보를 올릴 수 있다. 소매업체는 상품 주문, 정산, 부가세, 매입금 등을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다. 사입삼촌은 도매처별 대량주문을 클릭 한 번이면 할 수 있다. 또 한밤중에도 사입처리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 동대문은 현금 거래가 기본이지만 셀업은 카드 결제도 가능하게 했다.
쉐어그라운드는 사업성을 인정받아 30억원을 투자 받았다. 현재 셀업을 통한 하루 주문량은 약 2만6000건에 달한다. 누적 주문 건수는 400만건이다. 플랫폼 내 월간 거래금액은 2021년 상반기에만 1080억원을 기록했다. 2019년 100억원에서 약 2년 만에 10배 이상 늘었다. 올해 예상 거래 액은 3000억원이다.
이연 대표. /쉐어그라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