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하지 않고 소방관 등 구조대에 물·맥주 등 3만불 상당 무료 제공
선행 입소문…테러보상 보험 없었는데…보험료 받고, 가게도 더 잘돼
매년 9·11 테러 기념일이면 남다른 감회에 빠지는 한인이 있다. 1984년부터 뉴욕 맨해튼의 허드슨스트리트에서 식품점 ‘모건스 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윤건수(64)씨다. 조선일보는 최근 9.11테러 20주년을 맞아 윤건수씨에 관한 특별기사를 게재했다.
윤씨의 가게는 2001년 9월11일 알카에다 테러범이 두 대의 여객기로 들이받아 무너진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에서 북쪽으로 약 600m 떨어진 곳에 있다.
최근 조선일보 기자와 가게에서 만난 윤씨는 20년 전 상황을 담담히 말해주었다.
쌍둥이 빌딩이 차례로 무너지면서, 일대가 온통 새하얀 먼지로 뒤덮힌 그 날… 경찰은 사우스타워 붕괴 직후 주변을 봉쇄하고 가게들에도 모두 셔터를 내리고 대피를 지시했다. 하지만 윤씨는 24시간 운영하는 가게여서 셔터도 없었기에, 대부분의 직원들을 내보내고 한인 4명이 남아서 가게를 지키기로 했다. 전기도 완전히 끊긴 상태였다.
“지하에 촛불을 켜고 모여있다가 밖으로 나갔더니, 흰 먼지를 뒤집어쓴 소방관 한 명이 걸어오고 있었어요. 그래서 닦을 수 있도록 직원에게 종이타월과 물을 빨리 갖다 주라고 했어요.”
윤씨의 가게는 당시 통제 구역의 끝자락에 자리해 소방대원들이 구조작업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기 쉬운 위치였다. 4시간 근무, 2시간 휴식으로 순환 근무하는 소방관들은 그늘이 있는 길바닥에 눕는 등 지친 몸을 달랬다.
윤씨는 소방관들에게 “어차피 정전이 돼서 우리 냉장고를 다 비워야 하니, 원하는 것은 다 가져다 드시라”고 했다.
그때부터 윤씨 가게는 며칠 동안 소방대원과 경찰의 무료 쉼터가 됐다. 집에 가있던 윤씨의 다른 직원들도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이튿날부터 나와서 구조 인력에게 물, 맥주, 얼음, 음식, 담배 등을 제공했다. 씻을 수 있는 지하실 공간도 내줬고, 여성 대원들에게는 화장실을 제공했다. 테러 이틀 뒤에 구세군의 구호품 부스가 가게 앞에 차려졌고, 윤씨는 며칠을 더 가게에 머물며 대원들을 도왔다.
이 소식은 지역 언론매체를 통해 곧바로 알려졌다. 주변에서 발전기 대여업을 하던 다른 상인은 윤씨에게 무상으로 발전기를 빌려줬다. 미국 전역에서 윤씨에게 감사의 편지와 함께 후원금도 들어왔다.
윤씨가 당시 구조대원 등에게 무상으로 제공한 식료품은 나중에 추산해보니 약 3만달러어치였다. 윤씨는 테러 보상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보험사로부터 나중에 3만5000달러를 보상받았다. ‘9·11의 또다른 영웅’으로 알려져, 윤씨는 지역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관들과도 더 가까워져 영업에도 도움을 받았다. 가게는 입소문을 타고 장사가 더 잘 됐다. 그는 2003년 뉴욕 경찰 모임에서 감사패도 받았다.
댓가를 바라지 않는 선행은 윤씨의 경우처럼 언제나 나중에 빛을 보기 마련이다.